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로(李明魯)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381386
  • 전몰일자 : 19510423

공훈사항

이명로 이병은 1927년 5월 8일 서울시 용산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쌍방간에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3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명로 이병은 전선에 투입되어 연대병력과 3월 21일 동대산 동쪽의 식당동-황병산을 지나 구질리 방면으로 도주하는 북한군 제10사단 패잔병들의 북상을 차단하기 위해 수차례 접전을 치렀다. 이어 22일 오전 8시 10~16Km 전방의 카이로선으로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1번 도로를 따라 진출한 이 이병이 소속된 연대는 적의 저항이 경미하여 정오경 통제선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명로 이병과 연대 장병들은 4월 21일 임진강 북쪽의 대덕산-백학산-강정리를 연하는 선에서 정찰활동에 주력하면서 오금리-마지리 간 주저항선의 방어진지도 강화하였다. 그가 소속된 사단은 문산 북쪽의 고지군에 배치되어 임진강을 방어하고 있었다. 이어 4월 22일 해가 지고 저녁 8시를 전후하여 중공 제64군은 일부 병력으로 임진강 북쪽에 진출한 이 이병과 연대병력의 퇴로를 차단한 후 포위공격을 기도하였으나 장병들의 투혼에 밀려나고 말았다.
이명로 이병이 소속된 연대는 중공군의 도하를 저지하기 위하여 고랑포 일대와 강상에 기계화된 포병의 탄막사격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도하준비를 완료한 중공군은 조수의 영향으로 강물의 수위가 낮아진 23일 새벽 2시 30분을 전후하여 자지포 일대에서 2개 중대 규모로 도하공격을 개시하였다.
이 이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임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명로 이병은 1951년 4월 23일 파주 부근 전투에서 적이 쏜 탄환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로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10묘역-6판-134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3-ㅍ-04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