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로(李明魯)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106

공훈사항

이명로 경사는 1925년 1월 9일 경북 달성군 다기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철도경찰 소속으로 재직 중 철원에서 전사했다.
1949년 4월 22일 내무부 치안국은 치안국 직속으로 철도경찰본대를 두고 용산, 청량리, 인천, 개성, 대전, 곡성, 광주, 목포, 순천, 대구, 안동, 부산에 지방철도경찰대를 설치하여 운영했다. 철도경찰에게 부여된 주 임무는 철도역과 교량·연선(沿線)·터널 등 철도시설의 경계였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개성 주둔 국군 제1보병사단 제12연대 예하 3개 중대 병력이 분산 철수하자 개성철도경찰대 50명이 북한군을 저지하고, 경의선 개성역을 사수하기 위한 전투를 수행했다. 북한 정규군 대비 전투력의 상대적인 열세로 고립된 경찰대원들은 적진을 향해 최후 돌격을 실시했으나 탈출한 3명을 제외하고 북한군의 집중사격으로 모두 장렬하게 전사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자 철도경찰대 본대는 6월 28일 서울에서 철수하여 전선이 남으로 이동함에 따라 국군과 함께 축차적으로 수원-천안-대전-대구로 이동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진행됨으로 9월 16일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작전을 감행했고, 철도경찰대 본대는 9월 25일 서울로 복귀했다. 서울로 복귀한 철도경찰대원들은 원래의 소속 근무지로 복귀하여 철도역의 정상적 기능 복구, 터널 주변의 잔적 소탕과 터널 내 적이 설치한 폭발물 제거 임무를 수행했다.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실지를 회복하며 38도선 이북으로 북상하자 퇴로를 차단당한 적은 지리산을 비롯하여 태백산맥 및 38도선 이북 산악지대로 들어가 유격전을 펼치며 지방의 치안 교란과 아군 주둔부대에 대해 공격을 기도했다.
이 경사는 철원지역에 잔적이 출몰하여 철도역 파괴를 기도한다는 정보에 따라 11월 5일 철원에 투입되었다. 11월 6일 철도역 주변 일대를 경비하던 중 잔적의 공격을 받고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 3명을 사살하고 계속해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로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3-ㅈ-01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