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래(李明來)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229978
  • 전몰일자 : 19521106

공훈사항

이명래 일등중사는 충청남도 대덕군 유성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할 때인 1950년 12월 초순,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31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명래 일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1월 중순, 제2사단은 영주-제천 일대에서 병참선경계를 하고 있었다. 이후 2월 13일에 안동 부근으로 이동하여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공비소탕작전과 병참선경계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사단은 안동에서 속리산-제천 일대로 작전지역을 확대하여 공비소탕작전을 완수하고, 4월 28일에 청평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전방작전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2사단은 가평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편성했는데, 얼마 후 대규모 중공군이 5월 16일부터 공격하기 시작했다. 제2사단은 5월 19일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5월 20일을 기해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미 제24사단의 가평 진출을 엄호했다. 제2사단은 5월 24일부터 시작된 2단계 반격작전에서는 청평-가평을 연결하는 도로의 감제고지에 배치된 적들을 제압하면서 38도선을 향해 일제히 전진했다. 그 결과 6월 15일까지 현재의 휴전선인 적근산-육단리-원동리 선까지 진출했다. 이즈음 유엔군과 공산군 간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사단은 10월 13일부터 18일까지 실시한 김화-금성진격작전을 실시하여 김화로부터 14km 북쪽의 금성 일대 감제고지들을 탈취하여 전초기지를 설치했다. 이후 중공군은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휴전협상에 임하면서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제2사단은 1952년으로 접어들면서 몇 번의 부대 이동을 거쳐 6월 30일에 미 제40사단의 진지를 인수하여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를 연결하는 주저항선에 배치되었다. 그러던 중 10월 14일에 사단은 상급부대 명령에 의거 오성산 남쪽의 중공군 전초지역인 저격능선(580고지)을 공격했다. 이에 중공군이 그날 밤부터 역습하여 피아간에 뺏고 빼앗기는 능선 쟁탈전이 계속되었다. 이명래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31연대는 저격능선을 방어하고 있었는데, 11월 6일에 중공군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격전이 벌어졌다. 당시 연대는 강력한 항공 및 포병화력의 지원을 받아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래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6692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49묘역-3판-2959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1-ㄹ-01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