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동(李明東)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15278
  • 전몰일자 : 19521113

공훈사항

이명동 하사는 경상북도 봉화군 방림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6월 5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에 배치되었다.
이명동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8월 중순, 제2사단은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 주저항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사단은 1952년 6월 1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미 제40사단으로부터 진지를 인수했었다. 당시 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공산군은 휴전협상에서 지연전술을 쓰며 군사력 증강에 노력했다. 따라서 유엔군사령관은 공산군의 공격 의지를 분쇄하고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예하 부대에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제2사단에서는 오성산에 남쪽 남대천 부근에 솟아오른 해발 580미터의 무명능선(저격능선)을 공격하기로 했다. 사단은 제17연대가 10월 14일에 공격을 개시하여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이에 중공군은 즉각적인 역습을 하여 저격능선을 두고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11월 25일까지 42일 동안 계속되었다. 이명동 하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전방연대를 직접지원하며 공격을 선도했다. 항상 공격작전 시에는 최전방에서 장애물을 개척하며 공격을 선도하고, 방어작전 시에는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공격을 지연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11월 13일 방어작전 시에 선두에서 장애물 설치작업을 수행하다가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동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7판-5면-21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1-ㅊ-02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