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돌(李明乭)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130632
  • 전몰일자 : 19501008

공훈사항

이명돌 이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초,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명돌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초, 제6사단은 9월 2일부터 시작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맞이하여 화산 주봉–725고지를 잇는 고지군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국군은 한때 영천, 경주, 포항이 함락되어 낙동강방어선이 큰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이에 제6사단은 신녕 북방에서 상급부대의 화력을 지원받아 적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저지했고, 북한군은 9월 12일 이후부터 공격을 중단했고, 공세를 취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에 보조를 맞추어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제6사단도 지금까지 방어하던 정면의 적을 향해 반격을 개시했다.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9월 20일까지 강력히 저항했다. 제7연대는 9월 20일에 사단의 주공으로서 조림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적들은 21일부터 가벼운 저항을 하면서 퇴각하기 시작했다. 제6사단은 9월 22일부터 북한군을 추격하여 9월 29일에는 충주, 10월 1일에는 원주를 확보했다.
이명돌 이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10월 4일에 춘천에 도착하여 춘천 시내를 감제할 수 있는 춘천 남쪽의 수리봉과 652고지를 점령했다. 10월 5일에는 차량으로 춘천을 출발하여 38도선을 돌파했고, 10월 7일에 북한군 제9사단 예하 2개 대대 규모를 격파하고 10월 8일에 화천을 점령했다. 적들은 38도선을 넘으면서 부분적으로 강력하게 저항했으며, 특히 화천을 공격할 때 저항이 심했다. 이날 화천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돌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4묘역-3판-1337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1-ㅎ-01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