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도(李命道)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502296
  • 전몰일자 : 19510714

공훈사항

이명도 일병은 경상남도 양산군 상북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간단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명도 일병은 서울 철수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하였고 이어 1월 말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1월 31일부터 미 전차의 지원하에 2개 대대 병진대형으로 안양 남쪽의 수리산-모락산을 공격하여 개시 5일 만에 치열한 백병전을 치른 끝에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서울 탈환 임무를 부여받은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3월 15일 제6중대의 도하를 시작으로 각 대대의 일부 병력만 도하시켜 적정을 탐지하도록 한 다음, 16일 한강을 도하하여 시내로 진출함으로써 서울 전역을 장악하였다. 그 후 서울에서 북상하여 진격하였고 고양 임진강 전투에서 북한군과 조우하여 치열한 전투를 수행하였다.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임진강과 화천저수지를 끼고 있어 방어에 유리한 선이다)상의 영평을 확보할 목적으로 사단을 문산 축선에 투입하였다. 이명도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고봉산 부근에서 경미하게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퇴하고 일산을 경유 금촌으로 진출하였다.
7월 10일부터 시작된 판문점에서는 휴전회담이 진행 중이었으나 전투도 계속되고 있었다. 양측은 서부전선에서 대규모 공세를 자제하였으나 신경전과 소규모전투는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수색정찰대 운용을 강화하였고, 제한된 규모의 공세적인 전투정찰도 실시하게 되었다.
이명도 일병은 일부 병력과 정찰 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과 조우하여 사격전을 전개하며 고군분투하였으나 끝내 방어하지 못하고 1951년 7월 14일 가재동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도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7501 육)을 추서하고 위패(33판-40면-2182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3-ㄷ-09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