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덕(李命德)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708090
  • 전몰일자 : 19500806

공훈사항

이명덕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전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잦았던 1950년 5월 하순경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육군직할 제5491부대에 배치되었다.
(*전사자 명부에 제5497부대는 고유명칭 확인이 불가능하므로 입대부터 전사 당시까지 6·25전쟁의 전반적인 경과 위주로 기술)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부족한 장비와 병력으로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직할부대를 전투부대로 동원해 의정부지구에 중점을 두면서 서울방어를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 육군은 우선 육군본부 직할의 모든 재경부대를 동원해 전방의 제1사단과 제6사단, 제7사단에 배속시켜 방어력을 증강했다.
따라서 6월 25일 수도사령부 예하 제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한 데 이어 오후에는 제18연대(-1)마저 추가로 배속하였으며, 제8연대를 제6사단에 배속해 가평지구로 투입했다. 또한 서울 특별연대는 제1사단에, 전투경찰 1개 대대가 배속된 육사생도대대는 제7사단에, 포병학교 제1교도대대는 제1사단과 제6사단 그리고 제7사단에, 제2교도대대는 제7사단에, 독립기갑연대 제1대대는 제1사단과 제6사단 그리고 제7사단과 제8사단에 배속했다. 6월 26일 저녁에는 육본 장교연대를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시켜 창동 지역에 배치했다.
이명덕 일병과 부대원들은 철수와 방어로 이어진 수세적인 전투를 전개하다가 일시 공격으로 전환해 혼성대대 병력이 동두천을 탈환하고 소요산까지 진출하였으나, 곧 이은 북한군의 대규모 반격으로 의정부 방면으로 철수했다. 이명덕 일병이 소속된 부대는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투력의 열세로 수도 서울을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한 후 한강선 방어전투를 전개했다.
이후 국군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축차적으로 지연전을 실시하여 7월 말에는 낙동강에 이르렀다. 국군은 유엔군과 함께 낙동강 선에서 강력한 방어 작전을 전개하여 북한군의 공세를 꺾었다. 이명덕 일병은 경상북도 칠곡 일대 다부동 전투에서 8월 6일 225고지를 분대원과 함께 돌격하던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덕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위하여 그의 위패(39판-7면-21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0-ㅊ-098)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