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남(李明南)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216602
  • 전몰일자 : 19530310

공훈사항

이명남 일병은 경상북도 영일군 홍해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 타결을 앞두고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고지쟁탈전을 한창 실시하던 1952년 6월 9일, 제주도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에 배치되었다.
이명남 일병이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제2사단은 상급부대 명령에 의거 저격능선을 탈취하기 위해 전투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격능선은 오성산 남쪽 남대천 부근에 솟아오른 해발 580미터의 무명능선으로 피아간에 확보 시에 현저한 이점을 제공하는 중요한 지형이었다. 제31연대는 사단의 화력과 공병을 지원받아 10월 14일에 공격을 개시하여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이때 이명남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31연대를 직접지원했다.
오성산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중공군 제15군은 바로 그날 밤부터 역습을 감행하여 저격능선을 빼앗았다. 이후 저격능선에서 고지쟁탈전은 장장 6주 동안에 걸쳐 진행되었다. 특히 11월 11일부터 17일까지 1주일 동안에 세 차례나 저격능선 중 A고지를 두고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되풀이되었으나, 18일을 고비로 제2사단이 완전히 확보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중공군의 공격 빈도가 점차 줄어들더니 11월 24일을 기하여 공격을 중지하고 방어태세를 취함으로써 저격능선은 최종적으로 사단이 확보하게 되었다.
이후 사단은 몇 번의 부대교대를 거쳐 1953년 봄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281고지)를 잇는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중공군은 항상 이 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따라서 이명남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방어진지 전방에 여러 종류의 장애물을 설치했다. 그러던 중 공병중대는 3월 10일에 적 침투조의 습격을 받았으나,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남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30묘역-판-2622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1-ㅍ-05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