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기(李明基)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67669
  • 전몰일자 : 19510122

공훈사항

이명기 일병은 1926년 12월 1일에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으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 중이던 1950년 11월 하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이명기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2월 말,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한 후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에 대비하여 방어진지 보강에 여념이 없었다. 당시 제6사단은 제7연대를 한탄강 남쪽의 마차산에, 제19연대는 백의리 일대의 종현산에 배치하고, 제2연대는 사단 예비로 동두천에 위치시켰다. 장병들은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 방어진지에서 진지구축과 장애물 설치 등 진지보강을 하고 있었다. 이명기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주요 축선에 대해 지뢰지대와 철조망지대를 설치하는 데 집중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예상대로 서울을 목표로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펼쳤다. 제6사단은 전곡 일대 방어진지에서 적의 최초 공격은 격퇴했으나, 계속되는 공격에 피해는 증가했다. 그리고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인접부대들이 먼저 돌파되어 후방이 차단될 위기에 놓였다. 이에 사단은 이날 야간에 방어지역에서 철수하여 의정부를 거쳐 서울 창동으로 집결했다. 이명기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최후까지 방어지역에 남아 장애물을 폭파하여 적의 진격 속도를 지연시키고, 마지막으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1월 3일에 경기도 광주의 한강 남안에 진지를 점령했다가 6일에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미 제9군단은 1월 15일부터 위력수색작전을 수행하여 적정을 파악하였고, 이후 제6사단은 적산리 일대 방어진지를 보강하며 차후 반격작전에 대비했다. 이 시기에 이명기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지뢰 및 철조망 등 장애물을 설치하고 있었는데, 1월 22일에 적 침투조의 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4판-5면-24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3-ㅅ-01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