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근(李明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78173
  • 전몰일자 : 19510901

공훈사항

이명근 일병은 1931년 5월 7일에 서울특별시 마포구 염리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19일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병참중대로 배치되었다.
이명근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북진작전에 참가했던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 부대들이 중공군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철수하면서 38도선 상의 진지를 점령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 중에 있었다.
1951년 접어 들면서 사단은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를 오르내리며 격전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중공군 2월 공세 이후 사단은 강원도 영월군 주천리 일대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했으며,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단양-풍기 간의 주보급로 경계임무를 수행하며 부대를 정비하면서 수색정찰 활동을 강화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했다. 이로써 이명근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美 제10군단은 8월 초순경에 南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北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강원도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개시했다. 이에 제5사단은 美 제10군단의 예비로서 재편성과 부대훈련에 전념하고 있었다. 8월 중순 장마가 그치자 美 제2사단은 제5사단 제36연대를 배속 받아 8월 16일부터 8월 22일까지 양구 북방의 983고지-940고지-773고지를 잇는 ‘피의 능선’을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후 이 전선을 사단이 인수 받아 점령했다. 그러나 사단은 이 전선을 8월 27일 적의 파상적인 반돌격에 의해 빼앗겼다.
계속해서 사단은 8월 31일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와 서희령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하여 9월 3일 서희령을 탈취했다. 이 전투에서 이명근 일병은 예하부대의 급식과 보급 지원 중 9월 1일 적 침투부대의 습격으로 분대원과 함께 교전하다가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근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6판-5면-05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3-ㄱ-06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