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규(李明奎)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11723
  • 전몰일자 : 19501001

공훈사항

이명규 일병은 출생 일자 및 출생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7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제8사단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에게 기습남침을 당했다. 이규영 일등중사와 제10연대 장병들은 38도선에서 경계 작전에 임하던 중이었기에 곧바로 방어 전투에 돌입할 수 있었다. 제10연대 정면으로 북한군 제1경비여단 및 제5사단 제10연대가 공격을 가했다. 한편 정동진 방면으로는 북한군 제945육전대와 제766부대가 침투하여, 제10연대에 대한 포위 및 제21연대의 증원 차단을 시도하였다. 제10연대 장병들은 소수의 병력에도 적의 기습에 맞서 싸웠지만 전쟁 초기 적군과 아군의 전력차이는 절대적이었다. 따라서 제10연대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하루가 지난 1950년 6월 26일과 27일에 제21연대의 증원이 축차적으로 도착함에 따라 주문진 탈환을 위한 반격을 준비했으나, 적의 공격으로 방어선이 위기에 처하게 되어 제8사단은 계획적인 철수를 단행하였다.
그 후 그가 속한 제8사단 제10연대는 1950년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낙동강 교두보상의 보현산 부근에서 북한군과 고지 선점을 위한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고, 이 전투에서 피아간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20일 기계, 안강 일대를 위협했고 제8사단이 위치한 영천 북방에 강한 압력을 가했다. 이에 제8사단은 주저항선에서 북한군을 끊임없이 저지하였지만 1950년 9월 4일 계속되는 압력에 지휘소를 선천동으로 철수하였다.
전력을 보충한 제10연대는 포위된 북한군을 완전 섬멸하고자 시급히 병력을 이동시켜 일부 병력으로 1950년 10월 1일 오후 15시에 전투를 개시하였다. 피아간 치열한 전투 끝에 북한군은 분산되어 패주하였지만 1950년 10월 1일 이 일병은 사력을 다해 전투에 임하던 중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규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8-ㅅ-08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