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규(李明奎)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87900
  • 전몰일자 : 19530717

공훈사항

이명규 이등중사는 1924년 12월 12일 강원도 강릉군 옥천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자 1950년 4월경 제8사단 제10연대에 입대하여 38도선 상의 동해안 축선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6·25전쟁 발발하자 연대는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6월 27일부터 대관령과 죽령을 넘어 경상북도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며 8월 초순 낙동강선에서 방어선을 구축했다. 연대는 의성전투(8.3.~13.), 보현산전투(8. 9.~28.), 영천전투(9. 6.~13.)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최후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사단은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의성-안동-영주-제천-원주-양평-의정부 축선으로 북진하며 적을 추격했다. 10월 8일 38도선을 돌파한 연대는 철원-평강-곡산-양덕을 거쳐 10월 24일 희천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기습적인 제1·2차 공세에 밀려 청천강-평양-38선 상으로 철수하여 춘천 동북방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사단은 중공군 제3차 공세(신정 공세) 때 횡성 일대까지 철수하여 방어편성을 했다. 연대는 1951년 2월 5일 횡성 부근에서 위력수색작전을 전개했으나,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적에게 포위되어 많은 피해를 입고 주포리로 분산 철수했다. 사단은 대구로 이동하여 전력을 보충한 후, 4월 6일부터 5월 11일까지 호남지역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했다. 이후 사단은 인제로 이동하여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8월 9일부터 9월 18일까지 강원 인제군 서화계곡이 노전평 전투에 투입되어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1031고지-965고지-854고지를 점령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등중사는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이명규 이등중사는 긴 투병 끝에 1953년 4월 초 회복되어 전남 광주에서 창설된 제1전차대대로 전속되었다. 동 대대는 1953년 4월 5일 전남 광주에서 창설되어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대대는 6월 2일 제15사단을 지원하여 강원 고성군 351고지 전투에 투입되어 북한군 제7군단 예하 제7사단과 공방전을 펼쳤다. 이 전투에서 이명규 이등중사는 전차를 이끌고 보병연대를 적극 지원하다 적의 대전차포 사격에 맞아 7월 17일 김화 부근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규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9-ㄴ-01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