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국(李溟國)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402318
  • 전몰일자 : 19501016

공훈사항

이명국 일병은 1933년 10월 18일 경상북도 달성군 하빈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 발발 전 북한의 남침징후가 높아지고 있던 1950년 6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육본 직할부대에 배치되어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하여 미약한 병력과 장비로 혼신의 힘을 다해 방어하고 있었다. 육군본부는 6월 25일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제3연대를 제7사단에, 그리고 오후에는 제18연대(-1)도 추가로 배속하였으며, 제8연대마저 제6사단에 배속하여 가평지구에 투입했다. 6월 26일 저녁에는 육본 장교연대를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하여 창동 지역에 배치했다.
이명국 일병과 부대원들은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투력 열세로 수도 서울을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한강선 방어 작전을 전개했다. 이 전투는 전쟁초기 수도 서울이 함락되었을 때, 국군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예하 3개 혼성사단이 중심이 되어 전차 1개 사단으로 증강된 북한군 제1군단 소속 3개 사단과 한강을 잇는 선에서 치른 방어전투이다.
그 후 이명국 일병과 부대원들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축차적으로 지연전을 실시하여 7월 말에는 낙동강에 이르렀다. 국군은 유엔군과 함께 낙동강 선에서 강력한 방어 작전을 전개하여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성공적으로 저지한 후,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을 계속해 한・만 국경에 도달하였다.
이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오직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명국 일병은 북진작전에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0년 10월 16일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국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3-ㄴ-05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