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구(李明九)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28319
  • 전몰일자 : 19521008

공훈사항

이명구 하사는 충청북도 논산군 성동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7월 26일 제주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황은 1951년 8월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고지쟁탈전이 1952년에 접어들면서 더욱 정교해지고, 그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따라서 더욱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므로 더욱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명구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2년 5월 금성-북한강 동안까지의 전선을 인수하여 동부 전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이 하사는 연대병력과 화천일대 금성천 북안 일대에서 정찰활동을 수행하던 중 북한군과 마주치게 되어 교전을 벌여 중공군 여러 명을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후 6월 16일 전투지경선 조정에 따라 교암산 동측 765고지-690고지-663고지-북한강 동안 어운리 선을 주저항선으로, 575고지, 지형능선, 수도고지등에 배치되어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명구 하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7월 8일 지형능선을 공격해 점령했으나 북한군의 역습을 받아 물러났다. 또다시 9월 6일 북한군은 맹렬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고지 좌우측 계곡으로 공격해 왔다. 이에 이 하사를 비롯한 장병들은 최후까지 분전했으나 수도고지는 함락되었다. 이어 9월 9일 고지탈환 임무를 부여받은 연대는 공군의 근접지원과 포병의 지원 아래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때 그와 연대병력은 고지를 향해 돌진해 고지를 점령하였다.
10월 6일부터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 재개된 북한군의 공격은 수류탄이 무수히 투척되고 소화기탄과 포탄이 난무하는 격렬한 양상으로 치달았다. 이명구 하사와 연대병력은 포탄이 빗발치며 낙하하는데도 미친 듯이 참호전을 전개하며 어떤 희생에도 고지를 방어하려 하였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명구 하사는 1952년 10월 8일 김화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구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6-ㄹ-08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