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구(李命求)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5102694
  • 전몰일자 : 19520425

공훈사항

이명구 일등중사는 1931년 7월 25일에 충청남도 공주군에서 출생하였다. 이 일등중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일등중사는 1949년 8월 1일에 입대 후 제7사단 제19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7월 5일에 제7사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19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0월 25일에 제9사단이 창설될 때 연대의 제2대대가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2대대 소속이었던 이 일등중사는 전후 행정처리 과정에서 소속이 제9사단 제29연대로 정리되었다.
제9사단은 1951년 3월 5일에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12일부터 18일까지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제9사단은 4월 중순 강원 고성군 진부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이에 제9사단은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중공군은 1951년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이 공세로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전력에 큰 손실을 입은 제9사단은 1951년 5월 29일부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포천으로 이동해 와이오밍(Wyoming)선(캔자스선 북방 20km 내외의 철의 삼각지대를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6월 3일부터 11일까지 중공군 제65군 예하 제165사단과 격전을 벌여 고대산을 확보했다.
제9사단은 철의 삼각지 확보에 중요한 감제지형인 김화읍 계웅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사단은 치열한 공방전 끝에 6월 28일 동 고지를 확보한 후 계속되는 적의 역습을 격퇴했다. 사단은 1952년 전반기 이후 국군 제2군단이 1952년 4월 5일 재창설되어 전선에 투입됨에 따라 전선이 조정되어 사단은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이 일등중사는 1952년 4월 25일 수색작전 중 적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구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9-ㄹ-01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