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교(李明敎)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402777
  • 전몰일자 : 19510105

공훈사항

이명교 이병은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現 남양주시 와부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초순경 제5사단에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이명교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북진작전에 참가했던 많은 부대들이 중공군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큰 피해를 입으면서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철수하는 부대를 엄호하기 위하여 1950년 12월 5일경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17번 국도상의 춘천에 배치하여 엄호작전을 실시했다.
사단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25연대와 교도대대로서 춘천 북방 촛대봉-봉덕산-가덕산을 잇는 선에서 최후 저지선을 설치하고, 제29연대는 화천으로 이동하여 집결 중이었다. 이러한 북한군은 중공군의 남하에 힘을 얻어 교착상태의 전투가 지속되었다. 이명교 이병이 소속된 제5사단은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실시했다.
당시 제5사단은 제36연대를 가평 북쪽의 지암리 일대, 그리고 제27연대를 청평 동쪽의 호명산 일대에 배치시키고, 제35연대는 사단 예비로서 북한강 서쪽의 송암리 일대에 배치시켜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하고 있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사단의 후방을 차단했다. 1월 2일 밤에는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북한군 제10사단 병력들이 제천-단양-안동까지 침투하자, 사단은 문막 일대에서 제천-영월로 방어 배치를 전환하여 영주 지역에 침투한 북한군 제2군단 예하 부대들을 격멸했다. 이명교 이병은 제천 일대 방어진지에서 분대원과 함께 사단 사령부와 예하부대와 통신망을 확인하다가 1951년 1월 5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교 이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3판-40면-2181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ㄱ-010)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