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관(李明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8258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명관 일병은 경상남도 거제군(現 거제시) 사등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50년 1월 중순경에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육군통신학교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73통신대대로 배치되었다.(전사자 명부에 소속이 제73통신대대는 당시 미 존재로 통신학교로 조정)
통신학교는 1947년 1월 20일에 경남 진해에서 창설된 남조선 국방경비대 통신학교가 모체가 되었다. 이 통신학교는 1947년 10월 23일 경기도 태릉에 위치한 남조선 국방경비대 사관학교로 이동하였고, 통신교육대로 개칭되었다. 이후 영등포에 위치한 통위부에서는 1948년 6월 15일에 직속으로 제51통신대대를 창설했는데, 통신교육대에 예속시켰고, 이는 무선통신교육대로 개칭했다. 그리고 무선통신교육대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맞춰 육군 직할 통신학교로 발족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부족한 장비와 병력으로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직할부대를 전투부대로 동원해 의정부지구에 중점을 두면서 서울방어를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 전방의 각 사단은 적의 기습공격에 속수무책으로 큰 피해를 입고 방어진지가 무너져 철수를 거듭했다. 특히 수도 서울을 방어하는 제1, 제7사단 지역의 적의 주공방향이어서 피해가 더 컸고, 방어 상태는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육본에서는 수도 서울 방어를 위해 후방에 위치한 3개 사단에게 대대 및 연대 단위로 집결되는 대로 투입하도록 했다. 그리고 우선 육군본부 직할의 모든 재경부대를 동원해 전방의 제1사단과 제7사단에 배속시켜 방어력을 증강시키려 했다.
육군본부에서는 전쟁이 발발 후 곳곳에서 통신이 두절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육군통신학교에 전방 사단과의 통신을 소통시키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이명관 일병이 소속된 통신학교 교도대는 통신요원들의 양성에 주력하다가, 즉각 제1사단 지역으로 출동하여 육본과의 통신 소통을 위해 노력했다.
교도대는 제1사단 제12연대가 방어하고 있는 파평산 지역으로 출동하여 통신 소통을 위한 유선 가설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6월 25일 이명관 일병은 후방으로 먼저 침투한 적 정찰대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대항하여 분대원과 함께 교전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관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0판-8면-07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9-ㅂ-06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