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관(李命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20713
  • 전몰일자 : 19500925

공훈사항

이명관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중앙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명관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23일, 제6사단은 신녕 일대에서 북방의 화산을 탈환하기 위한 공격을 준비하여 8월 25일에 공격했다. 계속 공격하여 8월 31일에 화산을 좌우로 잇는 고지군을 탈취했다. 그리고 북한군의 대규모 공세(일병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맞이했다. 연대 장병들은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맞이하여 신녕 북방의 화산 주봉–725고지를 잇는 고지군에서 격퇴했다. 북한군은 최후 결전의 형태로 모든 역량을 투입하여 영천, 경주, 포항을 일시적으로 점령했고, 이에 유엔군은 9월 7일에 모든 화력, 즉 포병 화력과 각 대대의 박격포는 물론 미 공군 전폭기의 항공폭격을 지원받아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했다. 당시 제7연대는 신녕 북방에서 적의 공격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북한군은 더는 공격할 여력이 없었는지 9월 12일 이후부터는 공격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에 보조를 맞추어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제6사단은 지금까지 방어하던 지역인 신녕에서 반격을 개시했다.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강력히 저항했다. 사단은 9월 18일에 조림산 일대의 북한군을 포위 섬멸하고자 했으나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했다. 그리고 악천후로 항공화력을 지원받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군과 일진일퇴의 공방전만 실시했다.
이명관 일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9월 19일에 사단의 주공으로서 조림산을 공격했고, 북한군은 퇴각하기 시작했다. 이후 북한군은 9월 22일부터 전면적으로 퇴각하기 시작했고, 연대 장병들은 퇴각하는 북한군 제8사단을 추격하기 시작하여 9월 25일에 함창을 탈환했다. 이날 함창을 탈환하는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관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2판-1면-03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2-ㄷ-08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