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갑(이명갑)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23517
  • 전몰일자 : 19520221

공훈사항

이명갑 일병은 경상남도 고성군 삼산면 미룡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1월 22일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명갑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당시의 전황은 북진작전에 참가했던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 부대들이 중공군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철수하면서 38도선 상의 진지를 점령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을 잇는 전선방어에 투입되었다가,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1951년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그 후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 등에 투입되어,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8월에 접어들어 美 제10군단은 南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北으로 올리기 위해 양구 일대의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명갑 일병이 소속된 제36연대는 8월 16일부로 美 제2사단에 배속되었다. 연대는 캔자스선 진지를 감제하며 위협을 주는 양구북방 983고지-940고지-773고지를 잇는 ‘피의 능선’을 美 제9연대와 공격하여 9월 7일 목표를 탈취하였다.
제36연대가 복귀한 제5사단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에서 가칠봉과 서희령 전선을 굳건하게 지켜내면서 10월 20일부로 이 전선을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양양에서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하면서 수색정찰 및 매복 작전에 전념하다가, 1952년 1월 23일부터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방어에 투입되었다.
사단 정면의 북한군은 고성 남쪽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사단의 전초진지와 주방어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명갑 일병은 복무기간 많은 적을 사살했으며, 2월 21일 연대 주방어선에서 분대원과 함께 진지보강 중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갑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42768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3판-40면-2181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ㅈ-05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