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이명)

  • 군별 : 육군
  • 계급 : 소령
  • 군번 : 12907
  • 전몰일자 : 19501122

공훈사항

이명 소령은 경상남도 동래 어포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소령은 1949년 5월 23일 육군사관학교 제8기로 임관하여 제2사단 제16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소령의 부대 전입 후, 1950년 8월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한 제8사단은 북한군이 영천을 점령하려는 움직임을 파악했다. 이에 제8사단은 남, 서, 북쪽의 3개 방면으로 나누어져 공격을 개시하였고 1950년 9월 5일부터 13일간의 공방전을 통해 북한군을 격퇴하고 영천을 탈환한 데 더불어 적 제15사단의 전차 및 화포 대부분을 파괴하고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정비를 완료한 제8사단은 1950년 10월 15일 곡산 방면으로 진격해 곡산지구를 장악, 일대의 잔적을 소탕한 후 석봉을 향해 진격하였다. 제8사단은 계속 북진해 1950년 10월 24일 군단 중앙부 준험한 산악지대인 덕천에 돌입해 239고지에 잠복하여 저항을 기도하는 적 약 1개 대대의 병력을 포위하였다. 이어 적정을 확인한 후 하천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해 격멸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정비를 완료한 제8사단은 끊임없이 북진하여 1950년 11월 9일 덕천을 탈환하고 구장으로 진출한 후 계속 진출하여 초산으로부터 철수하는 제7연대에 대한 엄호에 임하였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제16연대는 구장동 일대에 배치되어 적의 남하를 저지하게 되었다. 이때 유엔군은 제8사단에게 청천강선으로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고 이에 제8사단은 개천으로 철수하여 맹산을 거쳐 영원에 이르렀다.
영원에 도착한 제8사단은 영원 정면 방어 임무를 맡고 맹산에 지휘소를 설치하였으나 당시 사단 예비대로 있던 제16연대가 우회하는 적을 발견하고 격전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중공군의 우세한 전력에 밀려 제16연대는 점차적으로 후퇴해 아군 제6사단과 임무 교대 후 군단 예비대로 소속되어 은산으로 철수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 소령은 1950년 11월 22일 북한군과의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 소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33묘역-1254판)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ㅅ-02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