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면양(李冕양)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603939
  • 전몰일자 : 19501210

공훈사항

이면양 일병은 경상북도 상주군(現 상주시) 외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광복 후 사회 혼란이 계속되고 있던 가운데, 1949년 2월 하순경 제3여단 제6연대에 현지 입대하여 경북지역 공비소탕작전에 투입되어 복무하다가, 5월 12일 제5여단이 사단으로 승격되면서 제5사단으로 전속되었다. 제5사단은 6·25전쟁 발발 전까지 사단 사령부를 전라남도 광주에, 제15연대를 전주에, 제20연대를 광주 송정리에 두고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6·25전쟁 초기에 제5사단은 제15, 20연대가 제1사단 장병들과 함께 문산 및 봉일천 전투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으나, 전력의 차이로 인해 6월 28일에 한강을 건너 철수했다. 당시 사단은 1950년 7월 초 국군 재편성 시에 해체되었다가 10월 8일에 대구에서 재창설되었으며, 이때 이면양 일병은 제27연대로 재배치되었다.
이면양 일병이 부대에 재배치될 무렵은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 및 북진작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제5사단은 10월 중순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지역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아군 6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적 936명을 사살하고 126명을 생포하는 등의 전과를 올리면서 후방지역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면양 일병이 소속된 제27연대는 연대지휘소를 포항에 두고 제1대대를 영해에, 제2대대를 영주에, 제3대대를 포항에 배치하여 대대단위로 지역을 맡아 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적 게릴라가 준동하는 지역을 반복 수색하고 잠복조를 운용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적 게릴라를 색출하여 소탕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 후 사단은 영남 지역의 후방지역작전지역을 제9사단에 인계 후 춘천지역으로 이동했다. 이후, 가평・청평・춘천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시행했으며 북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가평 북쪽의 지암리와 화천 부근의 잔적을 소탕했다.
이와 같이 제5사단이 적 게릴라 소탕작전을 실시하던 시기에 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작전으로 압록강 및 두만강을 향해 진격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단은 12월 5일경에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17번 국도상의 춘천에 배치하여 철수하는 부대에 대한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실시했다. 이면양 일병은 청평 동쪽 호명산 일대의 제27연대 방어진지에서 1950년 12월 10일 적 침투부대의 습격으로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면양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1-ㄱ-03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