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면락(李冕洛)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75930
  • 전몰일자 : 19530311

공훈사항

이면락 이등중사는 1931년 2월 3일 경상북도 안동군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이등중사는 1951년 12월 20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제7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양구군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잇는 전선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 무렵 휴전회담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공산군 측과 유엔군 측은 1951년 11월 27일 회담에서 “현재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설정한 후, 1개월 이내에 휴전이 성립되면 이 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확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현 접촉선에 대한 진지강화와 더불어 유리한 전초진지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연대는 미 제8군의 적을 유인하여 타격을 주고 포로를 획득한다는 ‘유인작전(Operation Clam Up)’ 작전개념에 따라 1952년 2월 11일 중공군을 크리스마스고지로 유인하여 타격을 주려 했다. 하지만 오히려 적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13일까지 수차례의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동 고지를 지켜냈다(제2차 크리스마스고지전투). 10월 6일 중공군 제202사단은 1,090고지에 대해 공격을 가했고, 연대는 14일까지 백병전을 전개한 끝에 이 고지를 지켜냈다(제3차 크리스마스고지전투).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연대는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위력수색과 매복, 교란작전을 지속했다. 이 이등중사는 1953년 3월 31일 소대원을 이끌고 매복작전을 수행하던 중에 적의 기습을 받고 교전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면락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4909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4-ㅁ-05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