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맹우(李孟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29651
  • 전몰일자 : 19510106

공훈사항

이맹우 일병은 1930년 2월 25일 경상북도 상주군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1월 17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북진하여 압록강 진격을 위한 크리스마스 공세작전을 준비하고 있었고, 사단은 10월 8일 38도선을 돌파 후 북진하여 11월 초순 비호산 전투에서 중공군을 격파하고 덕천에서 공격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사단은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24일 험악한 산악지형을 뚫고 묘향산 남방의 성불참, 하령곡산, 사항산 일대까지 진격했다. 중공군은 11월 25일 제2차 공세를 단행했다.
수색중대는 이날 금곡령 일대에서 사단 우측방 경계임무를 수행하다 연대 규모의 적 공격을 받고 분산 철수했다. 26일 중공군 제42군단이 사단과 제8사단 간의 전투지경선을 따라 집중 돌파를 함에 따라 각 부대들이 퇴로가 차단당하거나 후방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었다. 27일 사단은 적의 측후방 공격에 악전고투하며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미 제8군은 12월 1일부로 남쪽으로 철수할 것을 명령했고, 사단은 12월 3일 성천-강동을 거쳐 승호리 일대로, 6일 신계를 거쳐 시변리로 철수했고, 계속해서 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철수작전 중 수색중대는 적정 수집, 측방경계, 도로정찰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사단은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사단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5군단이 원주 지역에 깊숙한 돌파구를 형성하고, 제2군단이 경북 안동까지 종심 깊게 침투함에 따라 사단은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은 수색대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전투 시마다 앞장서 왔다. 하지만 그는 1월 6일 철수작전 중에 적의 기습사격을 받고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맹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2판-4면-15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1-ㅂ-03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