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맹도(李孟道)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44490
  • 전몰일자 : 19500706

공훈사항

이맹도 하사는 경상남도에서 1927년 9월 25일에 출생하였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하사는 1949년 6월경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제8사단은 1949년 6월 20일 국방경비대 제10연대를 기반으로 강릉군에서 창설되었으며, 제21연대는 그해 7월 5일 제8사단에 편입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8사단은 강원도 인제군부터 양양군 일대에 이르는 지역에서 38도선의 경계를 책임졌고, 제21연대는 유격대 소탕작전 중에 있었다. 제21연대는 강릉군 주문진에 주둔한 제10연대를 후위에서 지원하는 한편, 후방에 침투한 북한의 무장유격대를 토벌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21연대 장병들이 후방에서 무장유격대 토벌작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전방의 제8사단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에 기습남침을 당했다.
전쟁초기 적군의 전력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v보트 4쌍, 경비선 1쌍, 발동선 20척, 범선 40척 등으로 아군에 비해 우세한 상태였다. 때문에 아군은 전방에 배치된 제10연대로 하여금 지연전을 실시하고 제21연대를 강릉군 방면으로 이동시켜 방어태세를 강화했다.
그러나 적 주력의 서측 우회가 우려되었다. 이에 제8사단 제21연대는 제10연대에 배치되어 안인진리, 모전리, 언별리선에서 북한군과 격전을 전개했다. 북한군의 일부 병력은 산두곡에서 패주한 후 언별리로 향하고 그 우익대는 제8사단을 견제하고자 모전리에 공격을 개시하여 왔으므로 제21연대는 적에게 과감한 반격을 감행하여 이를 격퇴하였고 언별리에 증원 배치되었다. 이맹도 하사가 소속된 제8사단은 주문진 탈환을 위한 반격을 준비했으나 북한군의 공격으로 방어선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제21연대는 원주군으로 철수하려는 도중 적이 횡성을 점령하여 평창으로 진로를 변경하고 1950년 7월 2일 제천에 도착하여 제천국민학교에 전투지휘소를 설치하여 정비하는 동시에 제천을 향하여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도로상의 교량을 폭파했고, 제8사단은 집결과 정비를 위해 7월 5일 충주지역으로 이동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 하사는 충주지역으로 이동 중 1950년 7월 6일 북한군의 총탄에 맞아 금화에서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맹도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6-ㅋ-05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