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말석(李末錫)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05152
  • 전몰일자 : 19520809

공훈사항

이말석 하사는 1926년 9월 2일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3월 7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말석 하사가 소속된 사단은 1952년 4월 5일부로 제2군단으로 배속되어 동부전선을 방어 중이었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6월 16일 전투지경선 조정에 따라 교암산 동측 765고지-690고지-663고지-북한강 동안 어운리 선을 주저항선으로, 575고지, 지형능선(690고지에서 동북쪽으로 뻗은 1Km의 능선), 수도고지(663고지 북 500m, 610고지)등에 전초를 운용 중이었다. 이때 사단은 여호고개-여문리를 경계로 좌전방에 1연대, 우전방에 제26연대를 배치하고 제1기갑연대를 예비로 확보하여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말석 하사와 연대병력은 7월 8일 새벽 1시에 621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날은 가랑비로 인한 기도비닉 유지에 유리한 반면 적정판단의 어려움이 있었다. 북한군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면서 일시 고지 정상을 장악하였으나, 고지 서북쪽의 적으로부터 역습을 받고 물러났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7월 말부터 주저항선을 정비하여 진지 강화에 주력하였다. 그러던 중 8월 5일 소강상태를 깨고 수도고지로 공격을 재개하였다. 그는 2차례에 걸쳐 진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하였으나, 수도고지의 전초소대가 북한군의 포격에 견디지 못하여 주진지인 663고지로 철수하고 말았다. 북한군은 그 기세를 몰아 663고지 일대로 압박해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6일부터 수도고지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을 수차례 반복하였으며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전투가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시체가 부패하면서 전투 현장에는 발을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말석 하사는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으나 북한군의 포화에 의한 극심한 피해와 병력의 열세로 수도고지가 북한군에게 유린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1952년 8월 9일 꽃다운 청춘을 남겨둔 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말석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07164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6-ㄷ-02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