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환(李万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302990
  • 전몰일자 : 19510615

공훈사항

이만환 일병은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1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만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출생지 및 출생 일자 미상).
이만환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1950년 12월 도채동-서림-양양선에 주저항선을 구축하고 중공군의 정면공격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은 정면공격보다 오대산과 설악산으로 연결되는 산악지형을 발판으로 연대의 후방으로 진출하여 후방을 교란시키는 작전을 기도하였다. 이에 이 일병과 장병들은 12월 30일 대사리로 진출하여 이 일대에 출몰한 중공군 약 1,000명을 포착하여 화력전에 이은 백병전을 전개한 끝에 이들을 격파 분산시켰으나 탈주에 능한 중공군을 추격하는데 실패하였다.
1951년 1월 이만환 일병과 연대병력은 태백산맥 동쪽의 동해안에서 중공군의 신정공세에 직면했으나 비교적 접적이 경미하여 38도선 북쪽 진지를 고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1월 10일경에는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고 이어 2월 3일에는 묵호 부근에서 옥계로 진출하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연대 정면의 적은 강릉 남쪽의 청량리-아산리 간의 도로변에 견고한 저지진지를 구축하고, 강릉을 사수하고자 함으로써 치열한 격전을 치러야만 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2월 25일부터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었다. 4월 15일 재반격을 개시한 이만환 일병과 연대병력은 한계령-오색리-관모봉을 연하는 선으로 진출하여 주저항선을 구축하였으며, 적의 보급 및 병력의 집결지로 판단되는 설악산을 점령하고 가리봉-용대리로 진출하기 위하여 약수리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이어 5월 29일 간성 서북쪽 504고지를 공격해 점령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6월 3일부터 12일까지 향로봉 지구전투를 실시하여 북한군 제13사단을 격퇴하고 940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오직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만환 일병은 1951년 6월 15일 향로봉 전투에서 북한군이 쏜 총탄에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5-ㄲ-01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