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호(李万皓)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0719
  • 전몰일자 : 19510905

공훈사항

이만호 일병은 경상북도 청도군 남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출했다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했던 1950년 12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19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만호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1월 하순, 제6사단은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전곡 일대의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1월 6일에 장호원 북쪽의 적산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사단은 2월 11일 시작된 중공군의 2월공세 시에 중공군의 주공격 방향이 아니어서 큰 전투가 없었다. 이후 사단은 적들이 공세를 멈추자 바로 반격으로 전환하여 4월 21일에 사창리까지 진출했으나, 이곳에서 중공군의 강한 저항을 받고 방어로 전환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로 사창리 일대에서 큰 피해를 받고 가평을 거쳐 용문산 일대로 철수했다. 그리고 5월 16일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용문산 전방의 전초진지에서 물리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사단은 5월 20일부터 용문산에서부터 반격하여 5월 28일에는 화천저수지 이남까지 진출했다. 이만호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사단의 조공으로 6월 5일부터 취봉-백암산 방향으로 공격하여 6월 10일에는 연대의 최종 목표인 취봉을 확보하고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시작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제6사단은 방어진지를 보강하며 수색작전 활동에 집중했다. 이만호 일병이 소속된 소대는 9월 5일에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7판-6면-029호)를 국립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ㅋ-03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