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호(李万鎬)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86872
  • 전몰일자 : 19530616

공훈사항

이만호 이등중사는 1931년 2월 24일에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 협상이 지속되면서 고지 쟁탈전이 진행되던 1952년 1월 중순경 입대하여, 제주도 모슬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만호 이등중사가 부대로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제6사단은 양구 일대에서 야외기동훈련을 마치고 3월 22일에 美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부근의 거리실, 원남 일대로 이동하여 美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 일부를 인수했다. 사단은 4월 5일부로 국군 제2군단으로 배속이 변경되었다. 제2연대는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잇는 방어진지를 점령하여 주간에는 수색정찰과 방어진지 보강, 야간에는 매복 작전에 전념했다.
그 후 사단은 포로교환 문제로 교착된 휴전 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작전을 실시하라는 상급 부대의 명령에 의거 6월 12일에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금성천 북동쪽 A, B고지)를 공격하여 6월 15일 탈취했다. 이 무명고지는 피아를 감제 관측하는 데 주요한 지형이기에 적의 계속된 역습으로 전투는 계속되었다.
전선은 8월로 접어들면서 소강상태가 되었으나, 중공군이 9월 29일에 금성천 북동쪽의 감제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다시 두 차례에 걸쳐 공격해 왔다. 이에 제2연대는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격퇴하고, 10월 21일부로 왼쪽으로 확장된 책임지역인 552고지에 대한 방어를 담당했다. 이후 전선은 쌍방 간에 큰 전투행위가 없이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만호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1953년 1월 1일부로 사단의 예비로 전환했다가, 2월 5일부로 다시 책임지역 동쪽의 전방 방어지역인 교암산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연대는 주로 방어진지 보강, 수색 및 매복 작전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던 중 4월 하순경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탐색하여 격멸했다. 이 전투에서 이만호 이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교전하다가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강원도 묵호에 위치한 제59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 병원에서 정성스런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6월 16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호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23묘역-3판-749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8-ㅎ-07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