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형(李萬衡)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3848
  • 전몰일자 : 19500918

공훈사항

이만형 일병은 강원도 춘성군 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이 낙동강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8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5포병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이 북한군과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제7사단은 8월 20일 제3·5·8연대와 제5포병대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재창설되어 투입 준비 중인 상황이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제5포병대대는 신령지역의 수석봉과 기룡산, 그리고 그 동쪽의 602고지 일대에서 북한군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 제8사단을 지원했다. 9월 2일 북한군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제8사단 정면의 북한군 제15사단은 강력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전차를 앞세우고 죽장-자양-영천 접근로를 중심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이에 제8사단의 방어진지가 돌파당했고, 육군본부는 9월 2일 대구로 이동한 제7사단 제5연대(-1)를 9월 3일부로 제8사단에 배속했다. 제5포병대대는 포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제8사단과 제5연대에 쉴 새 없이 화력을 지원했다.
9월 5일 적 제15사단은 영천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제8사단이 영천 남쪽으로 철수함에 따라 6일 영천이 탈취되었다. 이에 제7사단은 9월 8일 제2군단에 배속되어 영천전투에 투입되었고, 사단은 제8사단과 함께 영천 남쪽에서 혈전 끝에 8일까지 적의 공격을 저지함으로써 국군 제2군단이 적을 포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9월 10일 제8사단에 배속되었던 제5·8연대와 제3연대 1대대가 사단으로 원복했다. 이날 반격을 시작한 사단은 당일 영천을 탈환하고, 영천-안강 간 도로를 확보했으며, 13일에는 무학산과 384고지를 점령 후, 기계 방면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격멸했다. 사단은 영천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의 최대 위기를 극복하고 조국을 지켜내는 데 크게 기여했고, 대통령 부대표창도 받았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16일부로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안강 북쪽의 도덕산 방면으로 진격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격퇴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적진을 향해 포탄을 쏘며 분전하다, 적 포격에 9월 18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형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3판-4면-00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9-ㄱ-03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