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출(이만출)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6077
  • 전몰일자 : 19500823

공훈사항

이만출 일병은 경상남도 부산시 월일동 768번지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작전을 진행 중인 1950년 10월 중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02야전공병단으로 배치되었다.
한편 육군본부는 1950년 8월 하순에 제1공병단을 제1201건설공병단으로 개칭하는 한편, 제1101야전공병단과 제1102야전공병단을 창설하여 제1, 2군단을 각각 지원하게 했다. 피지원부대인 제2군단은 1950년 7월 12일 경북 함창에서 창설되었고, 낙동강방어선의 다부동, 영천 등의 전투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조국의 위기를 구해냈다. 군단은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9월 23일 추격작전으로, 10월 5일 북진작전으로 각각 전환했다. 군단은 북진작전 때 제6, 7, 8사단을 배속받아 작전을 했다.
군단은 진격하는 제6, 7, 8사단을 지휘통제하며 양평을 경유하여 10월 3일 서울의 보성중학교로 이동했고, 이후 곡산-평양-개천으로 북진했다. 북진작전 간 공병단은 주보급로와 교량 건설·보수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전방 사단들과 군단에 대한 보급지원이 가능하게 했다. 초산, 희천까지 진격한 군단은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12월 2일부터 숙천-성천 선, 평양 북방 선, 예성강-시변리 선, 38도선 상으로 축차적으로 진지를 점령하며 지연전을 펼쳤다.
12월 31일 개시된 중공군 제3차 공세(신정공세) 때 군단은 철수하여 인제 남방의 부평리-관대리 간을 방어했고, 이후 대전으로 이동하여 공비토벌작전을 담당하다가 1951년 1월 10일 해체되었다. 이때 공병단은 철수로 확보 및 전방 사단 지원과 군단 후방지역작전을 위한 도로 및 교량 보수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제1102야전공병단은 육본 직할부대로서 후방지역의 보급로 설치 및 보수, 비행장 보수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만출 일병 1951년 8월 23일 충청북도 제천 일대 주보급로 보수 작업 중에 적 침투부대의 습격을 받고 교전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출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4판-3면-22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3-ㅊ-01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