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춘(이만춘)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79476
  • 전몰일자 : 19510529

공훈사항

이만춘 하사는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읍(現 김해시) 이별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16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공병대로 배치되었다.
이만춘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북진작전에 참가했던 많은 부대들이 중공군에 의해 후방이 차단된 후, 큰 피해를 입으면서 철수하여 38도선 상의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하여 제5사단의 후방을 차단하였고, 1월 2일 밤에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했다.
제5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북한군 제10사단이 제천-단양-안동까지 후방 침투하자 제천-영월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를 전환했다. 이후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하여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사단은 2월 12일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일명 2월 공세)을 받고 받고 철수를 개시하여 제천 북쪽 주천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중공군의 2월 공세 이후 이만춘 하사가 소속된 사단은 횡성 일대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막아 내면서 4월 17일에 인제를 점령하고, 4월 19일에 원통 북쪽의 481고지와 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사단은 부대정비를 마친 후 5월 7일에 한석산 좌측에서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목표로 공격하여 춘천 북쪽의 매봉-상수내리를 잇는 선의 진지를 점령했다.
사단은 5월 16일부터 중공군의 공격(일명 5월 공세)을 받고 5월 19일까지 부대가 포위되어 위기를 맞았으나 탈출, 재집결 후 새로운 진지를 점령하는 형태로 계속해서 중공군과 격전을 치르면서 5월 20일 홍천 부근 풍암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그 후 사단은 5월 29일부터 군단 우측을 담당하여 현리 서북방 지역에서 캔자스선 진격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로써 국군을 포위 섬멸하려는 중공군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만춘 하사는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지역의 무명고지에서 연대 방어진지 구축을 지원하다가 5월 29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춘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4면-867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ㅊ-04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