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철(李萬哲)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94775
  • 전몰일자 : 19520417

공훈사항

이만철 하사는 1934년 8월 18일 경상북도 영일군 영일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1년 3월경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구-양양을 잇는 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강원 인제군 한계리 일대까지 진출하여 캔자스선을 확보한 상황이었다. 4월 22일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사단 정면에는 북한군 제6사단이 투입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4일 동안 치열한 백병전을 전개한 끝에 기어이 한석산과 가리봉 일대를 지켜냈다.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은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현리로 물러섰고, 17일 사단 장병들은 적의 포위망을 뚫고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철수했다. 사단은 적의 끈질긴 추격을 받아 수많은 장병이 전사한 가운데 5월 20일 하진부리까지 철수해서야 겨우 병력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 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평창 송계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사단은 5월 말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수색정찰작전과 매복작전, 보급로 경계 등을 지속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사단은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쳤지만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1952년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이후 연대는 진지를 보강하면서 수색정찰작전, 매복작전, 적진에 대한 전투정찰 등을 지속했다. 이 하사는 1952년 4월 17일 분대원을 이끌고 수색정찰작전 중 적과 조우하여 교전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철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23묘역-2판-718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8-ㅂ-02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