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철(李萬喆)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7241
  • 전몰일자 : 19510601

공훈사항

이만철 일병은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5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간단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중공군의 4월 공세를 격퇴한 국군과 유엔군이 골든-노네임선에서 부대 재배치와 방어진지 보강에 주력하고 있을 무렵 전방사단들은 주저항선 전방에 정찰기지를 설치하여 방어종심을 증가시킴은 물론, 적정을 탐지하기 위하여 정찰대들은 화력의 엄호하에 적진 깊숙이까지 정찰작전을 펼쳤다. 이때 공산군은 전 전선에서 아군과 접적을 회피하는 등 활동이 소극적이었으나 유일하게 국군 제1사단이 방어 중인 문산-서울 축선에 북한군 제8사단을 투입하여 정찰기지 설치를 저지하였다.
이만철 일병이 소속된 제15연대는 정찰기지 확보는 물론 적 8사단을 격멸할 목적으로 5월 6일 국사봉(109고지) 일대로 진출하여 공격 준비를 완료한 후 7일 오전 6시에 미 제3사단의 엄호하에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적정이 경미하여 원당리 부근으로 순조롭게 진출하였다. 제15연대는 우세한 포병 및 전차 화력지원에도 불구하고 북으로 진출할수록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과 중공군의 증원으로 163고지와 박달산 부근에서 공격이 좌절되었다. 다음날(10일) 오후 이 일병과 연대병력을 문산-서울 도로변의 명봉산-대자동-관산리 일대의 정찰기지에 배치하고 방어태세를 보강하면서 위력수색에 열중하였다.
이후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이만철 일병이 소속된 제15연대를 문산 축선에 투입시켰다. 곡릉천 서쪽의 죽원리와 지영리 일대로 진출한 이 일병과 연대는 오후 5시경 곡릉천을 도하 북동쪽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봉일천-삼송리 도로 동쪽의 248고지 일대에서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좌절되었으나 다시 야간공격을 기도하여 자정 무렵에 목표 고지를 점령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만철 일병은 1951년 6월 1일 두포리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4판-7면-24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3-ㅁ-08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