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진(李萬鎭)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6601027
  • 전몰일자 : 19501112

공훈사항

이만진 이등중사는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에서 1929년 9월 9일에 출생하였다. 이 이등중사는 1949년 7월 25일에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21연대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을 받았다. 아군은 짙은 안개와 적의 양면 기습으로 인하여 적의 병력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고 불리한 전투를 개시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군 장병의 사기는 왕성하여 소수의 38도선 경비부대는 압도적인 적의 공격을 저지하며 비장한 전투를 계속했다.
전력을 보충한 제21연대 장병들은 8월 하순 영천지구전투에 투입되었다. 영천군은 대구와 포항을 잇는 요충지였다. 만일 영천군의 방어선이 무너진다면 낙동강 방어선의 종심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이에 제8사단 장병들은 영천군 자양면 기룡산에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했으나 북한군 3개 사단이 전차와 각종 포를 동원해 공격해왔다.
제21연대 장병들은 초반의 수세에도 불구하고 영천군을 지켜내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으며,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낙동강 전선의 총반격에 참여했다. 제21연대 장병들은 9월 초순에는 의성군을 수복했고, 9월 후반부터 죽령을 넘어 철원군과 평강군을 넘어 북진했으며, 10월 하순에는 묘향산맥을 따라 평안북도 희천군까지 이르렀다.
제21연대는 10월 3일부터 미아리-동두천-전곡리를 거쳐 10일에는 철원 지역에 진입했다. 적은 수도 서울을 아군이 수복한 이후 전의 상실하여 계속 북방으로 도주하다가 10월 8일 연천지구에 집결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아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제21연대는 10월 23일 곡산지구전투와 석봉지구전투를 전개한 후, 강동-성천-북창으로 진격했다. 10월 말 선두부대가 평안남도 희천에 진출했을 때 중공군이 참전하였다.
제8사단은 11월 영원에서 만포진과 중강진을 점령하라는 군단의 작명에 의거하여 11월 9일 덕천을 탈환하고 청천강의 요충지인 구장으로 진출한 후 계속 희천에 진출하여 초산으로부터 철수하는 제6사단 제7연대에 대한 엄호에 임했다. 이 이등중사는 1950년 11월 12일 적의 전투 중 총탄에 맞아 평안남도 영원군 일원에서 제21연대 장병들과 철수 작전을 엄호하다 중공군의 포격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진 이등중사의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045 국)을 추서하고 그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9-ㅅ-05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