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주(李萬柱)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5102200
  • 전몰일자 : 19530707

공훈사항

이만주 이등상사는 1927년 12월 19일 출생했다(출생지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49년 4월 1일 서울 용산에 주둔하고 있던 제1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연대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50년 4월 19일에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다.
이 이등상사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춘천에 위치하며 제7연대를 직접지원했다. 제7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춘천 북방에서 3일간 저지하고, 28일에 원주로 철수했다. 이후 7월 한 달 동안은 사단과 함께 충주-문경-함창 축선에 적의 진출을 지연시키고, 8월과 9월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두 차례에 걸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 이등상사는 낙동강방어선의 신령 전투에서 적탄에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이 이등상사는 1951년 부상에서 회복되어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배치되어 조교와 교관 임무를 수행하다 1952년 11월경 제52연대로 전속되었다. 한편, 제12사단은 11월 8일 강원도 양양에서 신편된 제53·55·56교육보충연대를 잠정 배속하여 창설되었다가, 12월 10일부로 이들 연대를 배속 해제하고, 중장비 연대로 개편 완료된 제37·51·52연대를 건제부대로 편성했다. 사단은 12월 18일 인제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을 끝내고, 12월 27일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30일 미 제45사단과 임무 교대하여 강원도 양구군 서화계곡을 감제하는 812-854고지를 잇는 전선을 인수했다.
제52연대는 사단 예비로서 진지교대 이후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진지를 보강하면서 위력수색,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적은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한편으로, 새로 투입된 중공군의 전투경험 축적과 아울러 방어선을 개선할 목적으로 6월 공세를 감행했다. 이 공세의 일환으로 사단 정면의 북한군 제3군단 예하 제45사단이 1953년 6월 1일부터 공격을 가해왔다. 사단 좌전방의 제37연대가 812고지를 탈취당하자, 연대는 역습을 감행하여 6월 10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지만 결국 812고지를 탈환하지 못하고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이후에도 적은 소규모 부대로 수시로 공격을 가해 왔다. 7월 7일 이 이등상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적들을 맞아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주 이등상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려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47289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33판-7면-26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5-ㅇ-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