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조(이만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6129
  • 전몰일자 : 19501005

공훈사항

이만조 일병은 경상북도 경산군 경산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자, 그는 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8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이 북한군과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7사단은 8월 20일 제3·5·8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재창설된 상황이었다. 민부대에서 제5연대로 개편된 연대는 8월 20일부로 제6사단에 배속되어 군위군 부계 일대의 대율동, 492고지, 527고지 등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9월 2일 북한군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제8사단 정면의 북한군 제15사단은 이날 오후 6시를 기해 강력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전차를 앞세우고 죽장-자양-영천 접근로를 중심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이에 제8사단의 방어진지가 돌파당했고, 육군본부는 9월 2일 대구로 이동한 제5연대(-1)를 9월 3일부로 제8사단에 배속했다. 연대 장병들은 자양동, 기룡산 일대에 배치되어 격전을 치렀으나, 적의 공세에 밀려 영천 남쪽의 진지를 점령했고, 이곳에서 혈전 끝에 8일까지 적의 공격을 저지함으로써 국군 제2군단이 적을 포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9월 10일부로 제8사단에서 원대 복귀한 연대는 이날 반격을 가하여 임포를 탈환하고, 영천으로 후퇴하는 적을 추격했다. 9월 12일 연대는 관산을 탈환하고, 13일에는 기계-안강 방면의 적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무학산과 384고지를 점령했다. 이어 연대는 기계 방면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격멸함으로써 영천전투의 승리에 크게 기여하고, 낙동강방어선을 지켜 낼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미 제8군 예비로 경주에 집결해 있다가 9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추격작전 때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문경-수안보-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7일 서울에 도착했다. 이 추격전에서 이 일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진격하다 10월 5일 북한군 패잔병의 기습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4판-3면-27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7-ㅊ-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