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조(李萬祚)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400156
  • 전몰일자 : 19500816

공훈사항

이만조 일병은 1930년 6월 17일에 경상북도 경주군 용강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8년 10월 중순, 경기도 부평의 병기학교로 입대하여 소정의 군사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직할부대인 병기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병기소대는 원주에 위치하면서 사단 일반지원 및 제19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남침을 감행했을 때, 제19연대 본대는 원주에서 기차로 청량리를 거쳐 춘천에 26일 새벽 5시에 도착했다. 이만조 일병이 소속된 병기소대는 제19연대와 함께 춘천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제19연대 장병들의 병기 보급 및 정비와 탄약 수송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제19연대 장병들과 함께 춘천 도착과 동시에 제7연대를 증원하였고, 6월 27일에는 홍천 방면의 제2연대를 증원하여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30일 오후에 홍천에서 원주로 철수했다.
제19연대 장병들은 7월 1일 야간에 이천지역으로 긴급히 투입되어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7월 4일에 안성을 거쳐 진천으로 철수하였고, 7월 9일에 수안보로 이동했다. 이후 7월 12일 문경-점촌-함창 일대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지연하다가 상급 부대 명령에 의거 8월 1일 새벽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으로 이동하여 양곡동 일대의 능선에 낙동강방어선을 점령했다. 제19연대 장병들은 8월 6일에 양곡동 방어진지에서 적의 공격을 수차례 격퇴하였으나, 적의 계속되는 공격에 결국은 진지에서 후퇴하여 선돌주막 남쪽의 236고지를 새로운 방어진지로 점령했다. 그리고 8월 8일 오전 11시경에 북한군이 선돌주막 부근까지 진출하자 조동과 외곡동 일대로 철수했다.
제19연대가 8월 13일에 군위-의흥을 거쳐서 매봉산과 산운동 일대로 철수할 때, 이만조 일병이 소속된 병기소대는 제19연대 장병들에게 탄약 지원을 했다. 북한군 제1사단은 8월 15일부터 전차의 지원을 받아 격렬히 공격했다. 그는 탄약 보급이 전투의 승패를 가른다고 생각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탄약 지원 활동을 했다. 그는 8월 16일에 탄약 보급을 위해 출동했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5면-26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9-ㅎ-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