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정(李萬正)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73930
  • 전몰일자 : 19501024

공훈사항

이만정 일병은 1921년 1월 12일 경상남도 김해군 명지면에서 출생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이 낙동강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1950년 9월 13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분연히 입대했다. 당시 전황이 워낙 급박했던 관계로 이 일병은 간단한 기초군사훈련만 받고 제7사단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이 북한군과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제7사단은 영천전투에 투입되어 기계 방면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사단은 영천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의 최대 위기를 극복하고 조국을 지켜내는 데 크게 기여했고, 대통령 부대표창도 받았다. 이 일병과 공병대대원들은 선두에서 적의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영천 탈환에 기여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미 제8군 예비로 경주에 집결해 있다가 9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추격작전 때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문경-수안보-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7일 서울 청량리에 도착했다.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한 연대는 김화를 거쳐 11일 평강에 진출하여 잔적을 소탕했다. 사단은 북진을 계속하여 10월 17일 곡산에 도달했고, 20일 평양이 탈환되자, 23일 미 제1군단 예비로 전환되어 29일까지 평양과 그 북방 일대의 잔적소탕 임무를 수행했다.
이 일병은 공병으로서 공격 때는 가장 앞장서서 적의 장애물을 탐색하여 제거하고, 방어 때는 가장 늦게 남아서 장애물을 엄호하거나 폭파하면서 전장에서 앞장서왔다. 그는 평양 일대의 잔적 소탕 작전에서도 적 장애물을 찾아 제거하는 데 앞장서다 10월 24일 적의 습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정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49-ㅅ-09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