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정(李晩晶)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367343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만정 이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대봉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중순에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2사단 직할부대인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제2사단은 11월 7일에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되면서 제17연대와 신편 된 제31, 제32연대를 예속시켰다. 재창설 직후 사단은 지휘소를 서울에서 가평으로 이동하고, 제17연대는 철원, 제32연대는 의정부, 배속된 제5사단 제35연대는 구화리 일대에 배치시키고, 제31연대는 제5사단에 배속되어 홍천 일대에서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만정 이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11월 초순에 사단은 의정부, 가평, 철원, 홍천 일대에서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유엔군의 주력이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할 때에 사단은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그리고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 공격에 대비하여 방어진지구축과 철조망 설치 등 방어준비를 강화했다. 그는 사단 통신대 장병들과 함께 통신선 연결을 위해 매일 예하 부대로 출동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시작하여 서울을 압박했다. 적은 아군의 후방을 차단하며 포위 섬멸하고자 했다. 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를 사수하며 적의 공세를 저지하고자 했으나 하룻밤을 버티지 못하고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진지에서 이탈하여 청평으로 철수했다. 이만정 이병이 소속된 통신소대는 빗발치는 포격 중에 통신망 유지를 위해 동분서주하며 전장을 누비며 통신을 지원했다. 이날 그는 통신지원 활동 중에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정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8-ㅊ-04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