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재(李萬宰)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35989
  • 전몰일자 : 19530520

공훈사항

이만재 하사는 1927년 5월 18일 전라북도 정읍군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2년 8월 7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동 훈련소 조교로 배치되었다. 이 하사는 신병교육에 전념하다 제57경보병연대가 창설되면서 이 연대로 전속되었다.
한편, 1951년 7월 10일 최초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회담이 진행되자, 한·미는 미군 재보충이 어려운 상황과 휴전 후의 한국 국방을 고려하여 1952년 초부터 육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1952년 11월 8일 강원도 양양에서 6개의 경보병연대(제53-제59연대)가 창설되었다. 이 중에서 제57·58·59연대는 제15사단에 잠정 배속되었다가 1953년 1월 1일부로 제1교육여단으로 재편성되었다. 여단은 창설 후부터 2월 8일까지 부대교육훈련(UTC교육)을 실시했다.
2월 9일 제20사단이 창설되면서 제1교육여단은 해체되고, 이들 연대는 제60연대(전 57연대), 제61연대(전 58연대), 제62연대(전 59연대)로 개칭되어 사단 건제부대로 편성되었다. 사단은 창설 후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인제로 이동 후, 야외교육훈련(FTC교육)을 포함한 교육훈련을 2월 10일부터 5월 14일까지 실시했다.
사단은 5월 15일 제7사단이 담당했던 양구군 방산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 일대의 전선을 인수했다. 사단은 제62연대를 좌, 제60연대를 우, 제61연대를 예비로 하여 방어편성을 했다. 적군은 사단이 진지 교대 후 수시로 박격포 사격을 가하면서 소규모 부대를 침투시켜 아군 진지를 교란했다.
이 하사는 분대장으로서 교육훈련과 작전 수행에 솔선수범 앞장서 왔다. 그는 5월 20일 적 소규모 부대가 진지로 침투해오자 분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며 이들을 격퇴했다. 하지만 그는 이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재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49688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77-ㅇ-01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