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일(李萬一)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500334
  • 전몰일자 : 19501101

공훈사항

이만일 일병은 경상남도 밀양군 봉남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이 낙동강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9월 초순 경남 밀양군 삼랑진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 공세를 맞이하여 혈전을 거듭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안강 일대에서 적과 뺏고 뺏기는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9월 3일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열차 편으로 긴급히 이동하여 안강읍 사방동 일대에 집결했고, 장병들은 그 서측의 무릉산 일대에 곧바로 배치되었다. 9월 2일 개시된 북한군 9월 공세에서 제12사단은 총공격을 개시해 안강을 점령하고 경주를 목표로 남진했다. 이때 좌측의 제8사단이 영천을 탈취당할 위기에 처했고, 우측의 제3사단도 포항을 빼앗김에 따라 이 지역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견부인 무릉산과 곤재봉 일대를 사수하느냐가 작전의 성패에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적은 9월 6일 연대가 배치된 무릉산 일대로 후방침투와 정면공격을 병행하여 기습적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연대 장병들은 사방동으로 분산 철수했으나, 기갑 연대가 역습을 실시하여 다시 진지를 탈환했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수류탄전과 백병전을 거듭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진지를 지켜내고 13일 결국 적을 격퇴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의 마지막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미 제8군 예비로 경주에 집결해 있다가 9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추격작전 때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강-안동-문경-수안보-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7일 청량리에 도착했다.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한 연대는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까지 진출하여 그 북방의 비호산 일대를 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진두에서 용감하게 진격하다 11월 1일 군우리 일대에서 북한군 패잔병의 기습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4판-7면-10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0-ㅅ-00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