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일(이만일)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04796
  • 전몰일자 : 19510828

공훈사항

이만일 일병은 1927년 8월 25일에 제주도 남군 대정면 차일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1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창설 요원으로 배치되었다.
이만일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950년 10월 초순, 제11사단은 9월 25일부로 편성을 완료하고, 사단사령부는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207호’에 따라 10월 14일 남원에 도착하여 공비토벌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예하 연대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제9연대가 경남에, 제13연대가 전북에, 제20연대가 전남 지역에 각각 분산 배치하여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수색중대는 험준한 노고산 일대에서 작전을 하고 있었다.
제11사단은 1951년에 접어들면서 공비들의 강력한 저항에 맞서 근거지 파괴와 지도 인물 체포를 통해 게릴라의 재집결을 봉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작전을 전개했다. 이에 3월 17일에는 화학산 일대에서 대규모의 적 게릴라를 사살했다. 이후 공비들의 세력 단위 활동은 소멸되었으나, 소규모 활동은 이어 갔다.
제11사단은 4월 6일에 후방지역작전을 제8사단에 인계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4월 공세시에 속초-간성 일대에서 철수하여 양양 북방의 대포리를 연하는 선에서 저지했다. 이후 5월 7일부터 인접부대인 수도사단과 함께 반격하여 5월 11일에 마등령-저항령-989고지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했으나, 5월 16일에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로 다시 철수를 거듭하여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이후 5월 22일부터 강릉-양양-간성-건봉산 방향으로 진격하여 6월 10일에 거진-건봉령을 잇는 선을 확보하고,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만일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8월 28일에 적진에 침투하여 적 보급소를 타격하여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으나, 이날 그는 타격 후 퇴각하던 중에 적의 총탄에 장렬히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79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ㄴ-08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