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익(李萬益)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306858
  • 전몰일자 : 19511121

공훈사항

이만익 이등중사는 제주도 북군 애월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으로 전환한 1950년 9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제2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만익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1월 초순, 제11사단은 남원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호남지역에 대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당시 제11사단은 8월 27일에 경북 영천에서 창설되어 10월 4일에 남원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예하 부대로 제9·제13·제20연대를 편성했다. 이만익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20연대는 9월 25일에 경남 삼랑진의 육군 제6훈련소를 모태로 재창설되어 10월 초순에 전남 광주로 이동하여 지리산 서남쪽 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1951년으로 접어들면서 회문산과 백아산 일대에서 대대적으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여 완전히 격멸했다.
제11사단은 4월 6일 호남지역 공비소탕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 4월 공세와 5월 16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을 맞아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이어 5월 22일부터 강릉-양양-건봉산 방향으로 반격하여 6월 10일에 건봉산-향로봉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쌍방 간에 휴전 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 진행되었다.
이만익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20연대는 수도사단이 방어하던 월비산(459고지)을 11월 17일에 인수했으나, 북한군 제9사단이 바로 다음날인 11월 18일에 공격했다. 이에 제20연대는 11월 24일까지 수차례 공방전을 펼쳤으나, 결국은 월비산을 방어하는 데 실패했다. 그는 분대장으로서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나, 11월 21일 전투에서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익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7판-2면-09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3-ㄲ-07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