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원(李萬元)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35644
  • 전몰일자 : 19530418

공훈사항

이만원 하사는 1927년 4월 23일에 전라북도 옥구군(現 군산시)에서 출생했다(세부 출생 장소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8월 7일에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만원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제1군단에 배속되어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여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사단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제9사단으로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침내 적 제9사단은 7월 10일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했다. 적의 기습공격에 아군은 적에게 동 고지를 탈취당했으나, 제27, 제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이 고지를 탈환했다. 그 후 제5사단은 1952년 11월 10일 현 전선을 제15사단에 인계하고 간성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하면서 주변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4월 15일부로 제2군단에 배속되어 철원군 김화지역 제3사단의 전선을 인수받아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인 일명 미주리(Missouri)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사단은 제36연대를 좌측 전방 949고지 일대를, 이만원 하사가 소속된 제27연대를 우측 전방 883고지 일대를 방어하도록 하고, 제35연대를 사단예비로 낡은터와 황병동에 보유하면서 주진지 및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이 무렵 중공군은 대규모 하계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제1차 공세 제1단계는 5월 10~15일 중대급 이하의 소규모 공격, 2단계는 5월 20~30일 대대급 이하의 목표에 대한 공격이었다. 이만원 하사는 복무 기간에 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나, 1953년 4월 18일 분대원과 함께 883고지 일대의 방어진지를 보강 중 적 침투부대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원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3160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14면-867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5-ㅇ-01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