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원(李萬源)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10324
  • 전몰일자 : 19510804

공훈사항

이만원 하사는 1926년 12월 14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잦았던 1950년 2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만원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0년 7월 5일 수도사단으로 편입되었다. 사단은 8월 4일 기갑연대를 배속시켜 8월 9일부터 9월 14일까지 전개된 기계-안강전투에서 북한군의 낙동강 방어선 돌파를 저지하였다.
이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9월 16일부터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집요한 공세를 물리치고 반격 및 북진으로 전환하여 제3사단과 함께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한 후 10월 10일 원산을 점령, 확보하기 위해 원산시가를 감제하는 고지군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189고지-136고지 산속의 과수원 일대에 잠복하고 있던 북한군의 전차포 3문과 직사포의 포격으로 진출이 저지되었다.
이만원 하사와 연대병력은 1951년 1월 10일에는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한 후, 2월 3일 공격을 개시하여 2월 7일 강릉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2월 11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전 전선이 밀리게 되자 다시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이어 4월 15일 재반격을 개시한 이 하사와 장병들은 한계령-오색리-관모봉을 연하는 선으로 진출하여 주저항선을 구축하였으며, 설악산을 점령하고 가리봉-용대리로 진출하기 위하여 약수리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이후 6월 4일 적은 강력한 박격포 사격의 엄호하에 이 하사와 연대병력의 전초진지인 산두곡산과 원봉 전장의 1209고지를 공격해왔으나 치열한 격전을 펼쳐 격퇴시켰다.
1951년 8월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고지쟁탈전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죽음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임했던 이만원 하사는 1951년 8월 4일 향로봉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원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09876 육)을 추서하고 유해(38묘역-3판-1836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5-ㄲ-02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