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우(이만우)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11375
  • 전몰일자 : 19521007

공훈사항

이만우 하사는 1932년 6월 26일에 충청북도 괴산군 증평면 교포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이 38도선 부근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3월 22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1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만우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4월 하순, 제6사단은 중공군의 4월 공세를 격퇴하고 중공군의 5월 공세를 대비하고 있었다. 얼마 후 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용문산 방어진지로부터 반격으로 전환했다. 사단 장병들은 5월 20일부터 공격하여 5월 28일에 화천저수지 선까지 진출하였고, 6월 15일에 백암산까지 진출하여 철의 삼각지대의 우측 지역인 등대리-단거리-수리봉을 연하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이후 휴전협상이 시작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군사력 증강에만 몰두하자, 유엔사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각 부대에 공세행동을 명령했다. 이에 제6사단은 1951년 가을이 되면서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작전을 펼쳤다. 특히 금성천 분지를 확보하기 위해 10월 13일부터 공격하여 정면의 중공군을 격파하고, 10월 21일에는 교암산-송설리-송동리까지 진출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1월 10일에 미 제9군단에 배속해제되어 양구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으로 전기전술을 연마한 후 3월 22일에 재배속되어 다시 전방 방어지역으로 복귀했다.
이만우 하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5월 22일에 교암산 방어지역과 전초기지인 575고지를 담당했다. 중공군은 제19연대의 전초기지가 된 575고지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5월 31일과 6월 14일, 두 차례에 걸쳐 공격하여 탈취했다. 그러나 제19연대 장병들은 그때마다 매번 역습으로 되찾았다. 이후 연대는 6월 19일에 575고지를 수도사단에 인계하고, 사단 예비가 되어 노동리 일대에 위치했다.
제19연대는 10월 5일부로 다시 전방 방어진지를 인수하여 방어진지 보강과 교육훈련, 그리고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이만우 하사가 소속된 소대는 10월 7일에 작전지역 내에서 수색작전을 하던 중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분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우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0693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6-ㅁ-07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