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우(李萬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사
  • 군번 : 1562818
  • 전몰일자 : 19510625

공훈사항

이만우 중사는 1929년 10월 7일에 경상남도 사천군 곤명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제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만우 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0년 10월 중순, 제11사단은 9월 25일부로 대구에서 사단본부를 편성하고 제9연대, 제13연대, 제20연대를 예하 부대로 편성했다. 당시 제9연대는 진주에 지휘소를 두고 지리산 동남쪽 지역에 대해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연대는 점점 작전지역을 넓혀 11월부터는 남원, 광양, 단성 일대로 확대했다. 그리고 1951년이 되면서 함양, 광양, 거창 일대로 작전지역을 이동하며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하여 공비들이 세력으로 활동하는 것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이만우 중사가 소속된 제11사단은 4월 6일에 국군 제8사단에게 공비토벌작전 임무를 인계하고, 대구·경산 일대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을 한 후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전방지역 방어임무를 수행했다. 사단 장병들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 시에 속초-간성 일대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4월 25일에 양양 북방의 대포리를 연하는 선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제11사단은 5월 7일에 반격으로 마등령-저항령-989고지 방향으로 공격하여 5월 11일에 989고지를 점령하고 계속 북쪽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5월 16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로 다시 철수하여 대관령-강릉 선에서 저지하고, 5월 22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하여 6월 10일에 향로봉-건봉산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고, 사단 장병들은 진지보강과 수색작전 활동에 집중하였는데, 이만우 중사가 소속된 소대는 6월 25일 새벽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우 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9판-4면-20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3-ㅋ-04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