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우(李萬佑)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9943
  • 전몰일자 : 19500916

공훈사항

이만우 일병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5월경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이 전개되었고 전쟁 초기 적군의 막강한 화력에 제8사단은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했다.
이 일병의 부대 전입 당시, 제8사단은 강원도지역 공비토별 작전을 마치고 주문진지역에서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제8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 제1경비여단과 맞서 싸웠다. 아군은 짙은 안개와 북한군의 양면 기습으로 적정을 정확히 판단할 수도 없는 불리한 상황 속에서 병력과 화력이 우세한 적군에 맞서 지연전을 펼쳤으나, 결국 강릉을 상실하고 철수하게 되었다.
이후 제8사단 장병들은 전쟁 초기 북한군의 공세에 1950년 8월 말까지 지연전을 펼치면서 낙동강 지역까지 후퇴하게 되었다. 영천군은 대구와 포항을 잇는 요충지로써, 제1군단과 제2군단을 연결하는 지점이었다. 만일 영천군 방면의 방어선이 무너진다면 낙동강 방어선의 종심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이에 제8사단 장병들은 경상북도 영천군 자양면 기룡산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며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제8사단은 9월 8일 영천군의 탈환을 시작으로, 북진과 반격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국군은 1950년 9월 16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이어 낙동강에서 국군 총반격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제8사단은 정비를 완료하고 1950년 9월 20일 작전에 합류해 제2군단의 우익부대로서 정면의 적을 압도하며 진격을 거듭하였다.
1950년 9월 25일 구산동 부근의 북한군을 격파한 제8사단은 의성 부근에서 저항하던 북한군에 대해 포위섬멸 작전을 실시하였다. 피아간 치열한 전투 끝에 북한군은 분산되어 패주하였다. 제8사단은 1950년 10월 3일 양평지구의 적을 격파하여 적의 저항을 받지 않고 빠른 속도로 서울을 향해 진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0년 9월 16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우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8판-3면-06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8-ㅌ-04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