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우(이만우)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9000432
  • 전몰일자 : 19500831

공훈사항

이만우 이등중사는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북한군에 밀려 남으로 후퇴하자 조국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이등중사는 1950년 7월 하순경 제3유격대에 입대했다.
한편, 전선이 남하하면서 영남 지역에 대한 북한군의 후방교란작전이 더욱 가열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대한청년단, 학도병 등의 인원으로 유격대를 편성하여 적들의 후방교란작전에 대응하고자 했다. 제3유격대는 1950년 7월 하순 동해안 지역과 태백산맥 일대에 투입된 북한군 제766부대를 비롯한 후방교란 부대에 대응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당시 유격대는 무기와 장비가 제대로 편성되어 있지 않아 일본군이 사용했던 99식 소총 정도로만 겨우 무장했고 탄약도 빈약했다. 하지만 대원들의 나라를 구해내겠다는 의지만은 충만했다.
이 이등중사가 유격대에 입대할 무렵 전황은 국군이 북한군의 남진에 밀려 소백산맥 선에서 지연전을 실시하고 있었고, 제3사단이 영덕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한편, 북한군 제766유격부대는 개전 초기 동해안 지역으로 상륙하여 태백산맥을 따라 내륙으로 침투했다. 이 부대는 전선 후방에서 무장폭동을 유발하고 철도와 수송 시설물을 파괴하며, 국군의 퇴로 및 증원부대를 차단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7월 중순경 제766부대가 청송, 주왕산 일대로 남진하자 제3유격대는 이 지역에 투입되어 경찰과 함께 합동작전을 펼치며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8월부터 낙동강방어선 전투가 시작되자 북한군 제766부대는 보현산에 근거지를 두고 주변 일대에 대한 유격전을 전개했다. 이에 제3유격대는 기계 일대 산악 지역에서 활동하는 게릴라들을 소탕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이 이등중사는 적과 조우하자 소대원을 이끌고 솔선수범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8월 31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우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23판-7면-355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3-ㅇ-02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