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우(李晩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506202
  • 전몰일자 : 19511120

공훈사항

이만우 이등중사는 1931년 12월 11일에 경상남도 밀양군 삼랑진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7월 4일, 부산 감천동의 제5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7월 10일에 온양으로 이동하여 제2사단에 예속되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인 침략을 하자, 제5연대는 육본명령에 의거 6월 25일 오후에 온양을 출발하여 밤늦게 의정부 북방의 금오리에 도착하였으나, 이미 제7사단은 방어체계가 무너져 철수하던 중이었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창동 및 미아리 방어선에 투입되었으나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6월 28일에 한강 이남으로 철수했다. 이후 제5연대는 7월 24일 제2사단이 해체될 때 함께 해체되어 장병들은 제1사단으로 전속되어 낙동강방어선의 수암산과 유학선, 다부동에서 전투했다.
이후 제20연대는 9월 25일에 경남 삼랑진의 육군 제6훈련소를 모태로 재창설되었다. 당시 이만우 이등중사는 제20연대 창설 요원으로 참가하였고, 연대는 제11사단에 예속되어 10월 초순에 광주지역으로 이동하여 지리산 서남쪽 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1951년으로 접어들면서 회문산과 백아산 일대에서 대대적으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여 완전히 격멸했다.
제11사단은 4월 6일 호남지역 공비소탕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 4월 공세와 5월 16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을 맞아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이어 5월 22일부터 강릉-양양-건봉산 방향으로 반격하여 6월 10일에 건봉산-향로봉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쌍방 간에 휴전 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 진행되었다.
이만우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20연대는 수도사단이 방어하던 월비산(459고지)을 11월 17일에 인수했으나, 북한군 제9사단이 바로 다음 날인 11월 18일에 공격했다. 연대는 11월 24일까지 수차례 공방전을 펼쳤으나, 결국은 월비산을 방어하는 데 실패했다. 그는 분대장으로서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나, 11월 20일 전투에서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우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73-ㅎ-07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